교황 레오 14세가 즉위 후 처음으로 발표한 교황 권고 '딜렉시 테'(Dilexi te, 내가 너희를 사랑했다)를 통해 가톨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했다. 현지시간 9일 공개된 이 권고문에서 교황은 가난한 이들,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이민자들, 그리고 사회로부터 소외된 모든 이들을 교회의 사명 가장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촉구했다. 특히 그는 일부 부유한 엘리트 계층이 자신들만의 '편안함과 사치의 거품' 속에 안주하며, 다른 이들의 고통을 무심코 외면하고 사회 밖으로 내치는 비정한 '폐기 문화'가 만연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경고하며, 교회가 이러한 흐름에 맞서야 할 것을 주문했다.

 

이번 권고문에서 교황은 교회의 역할을 '어머니'와 '다리'에 비유하며 구체적인 행동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교회는 길을 잃고 헤매는 이들과 어머니처럼 동행한다"고 말하며, "세상이 그들에게서 위협을 발견할 때, 교회는 그들 안에서 자신의 자녀들을 본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세상이 벽을 세우는 곳에, 교회는 다리를 놓는다"고 덧붙였다. AFP 통신 등 외신들은 이 발언이 국경에 장벽을 세우는 등 강경한 이민 정책을 펼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한 명백한 우회적 비판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레오 14세는 지난달에도 미국 내 이민자들이 겪는 비인간적인 대우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한 바 있어, 이번 권고는 그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셈이다.

 

교황은 자신의 메시지에 깊은 감정적 호소력을 더하기 위해 전 세계를 슬픔에 빠뜨렸던 한 장의 사진을 다시 소환했다. 바로 2015년, 튀르키예 해변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시리아 쿠르드족 난민 어린이, 알란 쿠르디의 이야기다. 그는 이 비극적인 사건을 상기시키며 "안타깝게도, 당시의 일시적인 분노와 슬픔을 제외하면, 이와 유사한 수많은 사건들은 점점 더 우리 사회의 깊은 무관심 속에 묻히고 있으며, 그저 스쳐 지나가는 주변부 뉴스로 전락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는 단발적인 연민을 넘어, 소외된 이들의 고통을 일상적으로 외면하는 현대 사회의 구조적인 무관심을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한다는 강력한 촉구로 해석된다.

 

'교황 권고'는 교황이 전 세계 신자들과 사회를 향해 발표하는 매우 중요한 사목적 가르침이다. 그 권위와 구속력이 회칙이나 교서 다음으로 강해, 교황의 사목 방향과 의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공식 문서로 평가받는다. 따라서 이번 '딜렉시 테' 발표는 레오 14세가 자신의 재임 기간 동안 가톨릭교회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인지를 세상에 공표한 출사표와 같다. 이는 교회가 단순한 종교적 가르침을 넘어, 사회의 가장 어두운 곳을 비추고, 고통받는 이들의 곁을 지키는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것을 선언한 것으로, 향후 그의 행보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